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의 입구에 들어설 때면 마트 매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채소가 있습니다.
바로 노란 속살을 수줍게 드러낸 ‘봄동’이지요. 사실 고백하자면, 저는 저희 아이보다 가리는 야채가 더 많은 편식쟁이 어른입니다. 대학시절 TV 프로그램 '1박 2일'에서 강호동 님이 봄동 비빔밥을 그렇게 맛있게 드실 때도 "풀떼기가 맛있어봐야 얼마나 맛있겠어?"라며 시큰둥했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2년 전, 우연한 호기심에 무쳐본 봄동 한 접시가 제 식성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이걸 왜 이제야 먹었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와 함께, 작년 11월부터 지금까지 세 식구가 봄동을 무려 네 번이나 사다 먹었으니 말 다 했죠? 오늘은 입 짧은 아이와 함께 사는 저희 집의 봄동 활용기를 들려드릴게요.

1. 매일이 새로운 맛, 변화무쌍한 ‘봄동 겉절이’의 매력
평소 저는 익은 김치보다는 갓 담근 새김치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익은 김치는 찌개나 볶음 요리에 양보하고, 식탁 위 반찬으로는 늘 푸릇푸릇하고 아삭한 식감을 찾게 되더라고요.
봄동 겉절이는 그야말로 ‘만만한’ 밥도둑입니다. 제 겉절이 철학은 조금 독특한데요, 바로 '정해진 레시피가 없다'는 점입니다.
- 그날의 영감에 맡기는 양념: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를 훑어보다 그날따라 꽂히는 양념 비율을 참고합니다. 때로는 액젓을 더 넣기도 하고, 때로는 단맛을 강조하기도 하죠.
- 예측 불가능한 즐거움: 매번 맛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그게 바로 집밥의 묘미 아닐까요? 신선한 봄동 본연의 달큰함이 기본을 잡아주니 실패할 확률도 낮습니다.
특히 이 겉절이는 뜨끈한 쌀밥에 참기름 한 바퀴 크게 두르고 쓱쓱 비벼 먹을 때 진가를 발휘합니다. 평소 밥 양이 적은 저조차도 고봉밥을 먹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거든요.
2. 편식하는 아이를 위한 엄마의 승부수, ‘봄동 된장무침’
우리 아이는 채소는 잘 먹는 기특한 면이 있지만, 정작 보통 아이들이 선호하는 고기류나 특정 음식들은 입에도 대지 않는 독특한 식성을 가졌습니다. 식사량 자체가 적고 가리는 게 많아 방학이면 돌봄센터 급식 대신 직접 도시락을 싸주며 영양을 챙기곤 하는데요.
이번 봄동 시즌에는 아이를 위해 ‘봄동 된장무침’이라는 변화구를 던져보았습니다.

- 맛있게 데치는 한 끗 차이: 팔팔 끓는 소금물에 단단한 줄기 부분부터 먼저 넣고 약 1분 30초간 데쳐줍니다. 그래야 잎과 줄기가 골고루 알맞은 식감을 유지해요.
- 찬물 샤워와 물기 제거: 데친 후 즉시 찬물에 헹궈 아삭함을 살리고, 물기를 꽉 짜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 아이 맞춤형 양념: 구수한 된장, 참기름(혹은 들기름), 다진 마늘 소량, 깨, 설탕을 넣고 무칩니다.
아직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아이를 위해 마늘을 아주 조금만 넣었더니 제 입맛엔 살짝 아쉬웠지만, "한 입만 먹어봐, 진짜 맛있어!"라는 엄마의 애원 끝에 아이가 겨우 한 입을 받아먹어 주었을 때의 그 쾌감이란! 하지만 더 먹어줬으면 하는 양가감정이 공존하는 그런 마음.. 어머님들이라면 다들 공감하시죠?
3. 술상과 밥상의 경계에서 찾은 제철의 행복
평일 내내 저녁을 비우며 가볍게 지내다가도, 금요일 저녁 남편과 함께하는 안주 상만큼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봄동 된장무침을 만들며 문득 기막힌 안주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고요.
"아, 이건 대패삼겹살이다!"
잘 구운 대패삼겹살에 짭조름하게 무친 봄동 된장무침을 곁들여 고추장 살짝 넣고 비벼 먹으면, 일주일의 피로가 싹 날아갈 것 같은 조합이지 않나요? 이번 일요일 저녁 술 빠진 정갈한 밥상에도, 혹은 다가올 주말 남편과의 오붓한 술상에도 봄동은 최고의 파트너가 되어줄 것 같습니다.
마치며: 제철 음식을 챙긴다는 것의 의미
어느덧 봄동 철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또 찬 바람이 부는 11월을 기다려야겠지요. 예전에는 몰랐던 제철 식재료의 소중함을 아이를 키우며 새삼 깨닫습니다. 입 짧은 아이에게 하나라도 더 좋은 것을 먹이고 싶은 마음, 그리고 주말이면 가족과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소소한 일상이 저를 '살림 전문가'로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내년 11월, 다시 돌아올 봄동을 기다리며 그때는 꼭 저만의 '황금 계량 레시피'를 기록해 여러분께 공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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