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방학이 길어질수록 저의 고민은 도시락 통 속에 머뭅니다. 내일은 어떤 도시락을 싸줘야 하나 하고 사진첩을 보다 보니 저를 추억에 잠기게 하는 메뉴가 하나 등장하더군요. 그건 바로 "전"입니다.
사실 이 전 한 조각에는 남들은 잘 모르는 저와 아이만의 눈물겨운 사투와 깊은 배려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아이의 '최애' 메뉴이자, 제 손목과 바꾼 정성이 가득 담긴 소고기 버섯전 도시락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1. "자기 주도식"의 눈물, 아이의 예민함을 이해하기까지
아이를 키우며 가장 힘들었던 건 단연 '먹이는 일'이었습니다. 분유 시절부터 하루 권장량의 2/3만 채워주면 고맙다고 생각해야 할 정도로 입이 짧은 아이였죠. 이유식을 시작하며 주변의 권유로 '자기 주도식'을 시도했던 날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식탁 의자는 난장판이 되고, 손과 입 주변에 음식물이 묻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아이를 붙잡고 참 많이도 울었죠. 그때 깨달았습니다. 이 아이는 단순히 편식을 하는 게 아니라, 신체에 무언가 묻는 감각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섬세한 아이라는 것을요. 깔끔하게, 한 입에 쏙 들어가는 형태가 아니면 아이에게 식사 시간은 고역이었던 셈입니다.
2. 주 4회 전을 부치던 2년, 엄마의 인내심이 만든 돌파구
그 예민함을 존중하며 찾아낸 돌파구가 바로 '전'이었습니다. 밥전을 부쳐주니 신기하게도 아이가 손으로 덥석 집어 먹기 시작하더군요. 묻지 않고 깔끔하게 먹을 수 있는 '전'이야말로 우리 아이에게 최적화된 식사 형태였습니다.
그날 이후 2년 넘게, 저는 일주일에 최소 4번은 전을 부쳤습니다. 아이가 거부하는 식재료를 전이라는 틀 안에 숨겨 먹이기 시작한 거죠. 애호박, 부추, 늙은 호박부터 돼지고기, 새우, 깻잎까지... 냉장고의 모든 재료가 전이 되었습니다. 특히 고기를 잘 안 먹는 아이를 위해 새송이버섯을 아주 잘게 다지고 소고기 다짐육을 섞어 '소고기 버섯전'을 완성했습니다.
3. 아기새처럼 입을 벌리게 만드는 '추억의 맛'
시금치나 나물을 무칠 때 간을 보라고 해도 도통 입을 벌리지 않는 아이지만, 이 소고기 버섯전을 부치는 날만큼은 풍경이 달라집니다. 지글지글 전 굽는 소리와 고소한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지면, 어느새 아이가 주방 곁으로 다가와 기웃거립니다.
"엄마, 한 입만!"
평소엔 흔치 않은 광경입니다. 아기새처럼 입을 벌리고 갓 구워낸 뜨끈한 전을 기다리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아침 일찍 기름 냄새 맡으며 불 앞에 서 있던 고단함이 눈 녹듯 사라집니다. 아이에게도 이 전은 단순히 반찬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을 온전히 이해받았던 따뜻한 추억의 맛이 아닐까 싶습니다.
4. 방학 한정 도시락 싸는 엄마의 '한 끗 차이' 노하우
도시락용 전은 식어도 맛이 있어야 하기에 조리법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 계란 노른자의 마법: 계란 전체를 쓰기보다 노른자 위주로 사용하면 색감이 훨씬 노랗고 예뻐서 아이의 식욕을 돋웁니다.
- 수분 조절과 식히기: 버섯에서 수분이 나오지 않도록 센 불에서 빠르게 익히고, 구운 직후 체망 위에서 한 김 충분히 식힌 뒤 도시락에 담아야 눅눅해지지 않습니다.
- 깔끔한 마무리: 종이 호일을 깔고 담아주면 기름기가 섞이지 않아 깔끔쟁이 아이가 끝까지 기분 좋게 식사할 수 있습니다.
5. 에필로그 : 엄마라서 가능했던 시간들
초등학생이 된 지금도 소고기 버섯전을 싸줬던 그날엔 "엄마, 오늘 전은 다 먹었어!"라고 말해주는 아이의 한마디가 저를 다시 움직이게 합니다.
주 4회 전을 부치는 일은 분명 고된 노동이었지만, 그 시간 덕분에 아이는 이제 소고기 버섯전에는 대파도 넣고 한 종류의 버섯이 아닌 여러 가지 종류의 버섯을 넣어도 여전히 전이라면 잘 먹는 어린이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아이가 기분 좋게 식사할 수 있다면 일주일 내내 삼시세끼 전을 부칠 수도 있는 게 엄마의 마음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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