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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 도시락기록 마지막 이야기] 32일간의 기록, 보통의 날들이 준 특별한 선물

by mweeee 2026. 3. 28.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두 달간의 겨울방학이 어느덧 끝자락에 다다랐습니다. 처음 방학 돌봄 교실 도시락을 준비해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막막함이 아직도 생생한데, 기록을 살펴보니 오키나와 여행과 설 연휴를 제외하고 총 32일간 아이의 점심을 책임졌더군요.

 

딱 한 달하고도 하루.

 

화려한 메뉴로 힘을 준 날도 있었지만, 결국 아이의 빈 도시락 통을 보며 깨달은 것은 '가장 평범한 집밥'이 아이에게는 가장 큰 위로였다는 점입니다.

우리 아이는 조금 특별한 편식을 합니다. 보통 아이들이 열광하는 감자튀김이나 고구마 맛탕 같은 구황작물은 입에도 대지 않고, 고기보다는 나물을 사랑하는 '어른 입맛'을 가졌죠. 입도 짧고 식사량도 적어 늘 엄마 마음을 애타게 하지만, 그 덕분에 저는 32일 동안 아이의 취향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방학의 마침표를 찍으며, 지극히 평범하지만 아이에게는 최고였던 '보통의 도시락' 에피소드를 공유해 봅니다.

 

1.  뜻밖의 구원투수, 갈비탕 밀키트와 냉장고 파먹기 '계란전'

계란말이가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이 들면 계란야채전 어떠세요?

 

 

방학 시작 전, 매일 아침 도시락 전쟁을 치를 생각에 아찔해진 저는 비상용 간편식들을 쟁여두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갈비탕 밀키트였죠. 사실 고기를 즐기지 않는 아이라 큰 기대는 없었는데, 웬걸요. 이 갈비탕 한 봉지가 이번 방학 최고의 효자 아이템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진한 국물 맛을 좋아하는 아이는 갈비탕 한 봉지로 무려 네 끼를 해결했습니다.

  • 영양 가득 자투리 야채 계란전: 계란말이는 손이 많이 가지만, '전'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고안한 메뉴입니다. 팽이버섯, 대파, 애호박 등 냉장고에 남은 채소를 잘게 다져 계란물에 넣고 부침가루 반 티스푼을 섞어 부쳐냅니다. 계란말이보다 부드럽고 전보다는 담백한 이 메뉴는 채소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거부감 없이 먹기 좋습니다.
  • 아이의 피드백: "엄마, 낮에 먹은 국 저녁에도 또 주면 안 돼?"라는 말만큼 요리하는 엄마를 춤추게 하는 말이 있을까요? 다음 날은 남은 국물에 당면을 넣어 '당면 갈비탕'으로 변주를 주었더니 후루룩 소리를 내며 한 그릇을 비워냈습니다.

 

2.  "우리 집 카레에는 감자가 없어요" 취향 존중 식단

다짐육만 보이는 신기한 카레, 그리고 아이가 좋아하는 오이

 

 

보통 카레라고 하면 알록달록한 당근과 포슬포슬한 감자가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우리 집 카레는 조금 단조롭습니다. 엄마인 저는 당근을 싫어하고, 아이는 신기하게도 감자를 거부하거든요. 남들이 보기엔 이상할지 몰라도, 도시락의 목적은 '아이가 즐겁게 먹는 것'이기에 과감히 생략합니다.

  • 비법은 양파 다지기: 감자와 당근이 빠진 자리는 돼지고기 다짐육과 아주 잘게 다진 양파가 채웁니다. 양파를 오래 볶아 단맛을 내면 아이는 양파가 들어간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맛있게 먹어줍니다. 여기에 카레의 단짝인 비엔나소세지와 입맛을 돋워줄 생오이를 곁들이면 심플하지만 완벽한 구성이 됩니다.
  • 도시락 철학: 비록 이날도 밥을 조금 남겨왔다는 고백을 들었지만 서운하지 않습니다. 돌봄 급식이었다면 손도 대지 않았을 메뉴를, 엄마표 도시락 덕분에 절반이라도 먹어주었으니까요.

 

3.  명절의 온기를 담은 냉장고 파먹기 도시락

볼때마다 너무 튼실해보이는 샤인머스캣, 그리고 시어머니가 주신 엘에이갈비와 방학기간동안 아이의 최애 국 미소된장국

 

 

명절이 지나면 워킹맘의 냉장고는 든든한 보물창고가 됩니다. 양가 어른들이 챙겨주신 LA갈비, 나물, 동그랑땡 등은 바쁜 아침 도시락 준비 시간을 단축해 주는 일등 공신이죠. 명절 직후의 도시락은 시댁에서 받아온 단짠단짠의 정석 LA갈비와 직장에서 선물 받은 샤인머스캣으로 채워졌습니다.

  • 나눔의 기쁨: 아이가 이번 겨울 유독 꽂혀있던 미소된장국을 보온병에 담아 보냈습니다. 아이는 국에 밥을 말아 갈비와 함께 든든히 먹었다고 하더군요. 특히 친구들에게 샤인머스캣을 나눠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도시락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수단을 넘어 친구들과 정을 나누는 매개체가 된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4.  피날레는 아이의 선택으로, "엄마 고생했어"

피날레는 아이가 요청했던 메뉴로만 구성 된 도시락

 

 

마지막 도시락은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은 욕심이 컸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인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죠. 아이가 요청한 메뉴는 의외로 소박했습니다. 떡갈비, 멸치볶음, 숙주나물, 그리고 미역국. 방학 동안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메뉴들의 총집합이었습니다.

  • 준비 과정: 수제 햄 세트에 들어있던 한돈 떡갈비를 노릇하게 굽고, 미리 무쳐둔 숙주나물을 곁들이니 준비 시간은 오히려 평소보다 짧았습니다. 마지막 도시락 가방을 닫는데 후련함보다는 섭섭함이 밀려왔습니다. "더 잘 싸줄 걸, 더 영양가를 고민해 볼걸" 하는 아쉬움은 모든 엄마의 공통된 마음이겠지요.

 

마치며 :  엄마의 성장이기도 했던 두 달

일하는 워킹맘인 저에게, 아이의 점심 도시락을 싸는 행위는 잊고 있었던 '함께 먹는 즐거움'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비록 저는 평일 저녁 절식을 하고, 금/토요일 밤 남편과 함께하는 술 한 잔 곁들인 밥상만큼이나 아이의 도시락을 준비하는 시간은 소중했습니다.

이제 다가올 여름방학은 3주 정도로 짧지만, 그때는 이번 겨울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더욱 건강하고 아이의 취향을 저격하는 메뉴들을 공부해 보려 합니다. 편식하는 아이를 둔 모든 엄마들, 그리고 매일 도시락 전쟁을 치르는 워킹맘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우리의 정성이 담긴 도시락이 아이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쑥쑥 키웠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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